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워싱턴 (문단 편집) === [[미국 독립 전쟁]] === 1750~60년대 유럽에서 [[7년 전쟁]]이 벌어지자, 신대륙에도 그 영향이 미쳐 [[프랑스-인디언 전쟁]]이 발발, 조지 워싱턴은 다른 영국계 식민지 유지들과 함께 영국군을 지원하는 식민지 의용군에 가담하여 나름의 공로를 세운다. 허나 식민지 전쟁에 많은 예산과 국력을 소모한 영국 정부가 이를 메꾸려고 식민지에 세금을 늘리고, 새로 편입된 식민지의 원주민을 다독이기 위해 식민지인의 구 프랑스 식민지 지역으로의 개척을 금지시키자, 이런저런 불만들이 쌓여서 1775년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한다. 그리고 1774년 구성된 대륙의회는 지휘관을 물색 중 이전 전쟁에서 인망을 보인 워싱턴을 대륙군(Continental Army) 총사령관으로 취임시킨다. 워싱턴은 초반에는 영국군에 연전연패하였는데, 워싱턴부터가 총사령관 임무는 처음 맡는 신참이었던데다가 초기 식민지 대륙군은 당시 영국군의 보조병격으로 원주민 또는 (비슷한 처지의) 프랑스 식민지군이나 상대해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영국군 같이 고도화된 선진군대와 싸운 적은 없는 민병대에 불과한 오합지졸들이었다. 워싱턴도 전술적 실수를 몇번 하는데, 그렇다고 대안이 있었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서, 초기의 영웅이자 후반의 배신자인 [[베네딕트 아놀드]]나 대니얼 모건, 너대니엘 그린 정도가 고작이었고, 이중에서도 총사령관이 가능한 인물은 베네딕트 아놀드 정도였지만 이때만 해도 그 정도급은 아니었고 결국엔 배신 때린다. [[찰스 리]]처럼 어떻게든 총사령관 자리 좀 뺏어보려고 온갖 뒷공작을 하며 워싱턴을 괴롭히거나, [[호레이쇼 게이츠]]처럼 얼마 되지 않는 군대를 제대로 말아먹은 인물도 있었다. 허나 이런 유리한 전쟁 상황 속에서도 영국군은 여러모로 운이 안따라줬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776년 12월 26일에 있었던 [[트렌턴 전투]]이다. 이 전투 직전의 상황은 연전연패하고 사기가 떨어진 워싱턴의 대륙군이 영국군만 보면 싸움을 회피하고 도망갈 정도였으나,[* 물론 전략적으론 원정군인 영국군에 불리한 [[소모전]] 성격은 있었지만, 이것도 아메리카 땅이 넓어서 가능했지 아니었음 진작에 영토 다 먹혔을 것이다.] 이래 가지곤 어차피 못이긴다고 판단한 조지 워싱턴의 과감함 + 전술적 변경 + 운이 합쳐져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https://pgr21.com/recommend/3038|조지 워싱턴의 급박한 열흘]]. 참고로 트렌턴 기지를 기습하기 위해 새벽에 얼어붙은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의 모습은 훗날 화가 엠마누엘 로이체의 손에 의해 가로 6m가 넘는 대작으로 그려져 미국 독립전쟁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으며 지금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igma1602&logNo=221113086130|#]] ||[[파일:1280px-Washington_AAAA-Crossing_the_Delaware_by_Emanuel_Leutze_MMA-NYC_1851.jpg|width=100%]]||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엠마누엘 로이체 작|| 이 외에도 워싱턴의 대륙군은 뜻밖의 행운 덕분에 열세를 딛고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신기하게 많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고대 건국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영웅담 수준이다. 그리고 1777년 이후, 생각보다 선전하는 대륙군을 보고 [[벤자민 프랭클린]] 등의 꼬드김에 응한 영국의 앙숙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부터의 지원에 힘입어, 워싱턴은 영국군을 본격적인 [[소모전]]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결국 토벌군은 단발적인 전술적 승리를 했음에도 전략적인 소모전에 계속 끌려다니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습은 [[베트남 전쟁]] 시기 [[호치민]]이나 [[보응우옌잡]]에게 당한 미군의 모습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마지막 [[요크타운 전투]]에서 패해 항복, 그길로 식민지에서 손을 뗀다. 워싱턴이 없었으면 미국 독립 전쟁은 얼마 안가서 끝났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식민의회는 독립파와 왕당파가 여전히 독립하냐 마냐로 팽팽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었는데, 때문에 인망이 없는 사람이 독립파를 지휘했으면 얼마 안가 민중의 지지를 잃고 독립파의 입지도 좁아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찌됐든 조지 워싱턴은 전술 천재 소리까진 듣지 못했지만 전략적 판단과 친화력, 통솔력으로 말 많은 13개 주를 단합시켜 끝내 독립을 쟁취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